[일본현지취재] ‘생활자주권정치’ 실험의 현장- 一新塾
‘주체적 시민’ 양성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정치실험
외부기고자 김국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기획위원 bitkuni@joins.com
정체된 일본 시민사회에 작지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잇신주쿠, 1994년 설립된 잇신주쿠는 정치·경제·생활·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테마를 다루는 정책학교이다. 다양한 연령·직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특별 비영리 활동법인 잇신주쿠의 활동 상황과 그것이 일본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알아보자.
일본이 지금 이렇게 무기력한 것은 국민 생활을 위해 세금을 쓰지 않고 엉뚱한 데 쏟아 부었기 때문이지.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은 끝장이야….”
1995년 여름, 일본 최대의 인재정보회사인 리크루트사에서 대졸자 취업 업무를 담당하던 31세의 평범한 샐러리맨 가토 고이치(加藤公一) 과장은 퇴근 길에 신바시(新橋) 선술집에 들러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정치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본사 건물이 있는 긴자(銀座)에서 신바시까지는 5분 거리. 1주일에 2~3일은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일이었다. 가토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샐러리맨들은 정치에 대해 거의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며 고작 술안주감으로 삼는 정도의 관심만 보이고 있다. 비판은 해도 유권자인 자신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대안은 없고 비판만 있는 것이 그들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국제파 지성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침묵하는 대중’이라고 꼬집는다.
1964년 도쿄(東京) 간다(神田)에서 태어난 도시청년 가토. 이름깨나 알려진 사립 명문 조치(上智)대 이공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후 대학생들의 취업 희망순위 10위권 안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리크루트사에 들어갔다. 입사 후에는 취업정보 잡지 제작, 대졸자 취업 컨설팅 등의 업무를 맡아 평범한 샐러리맨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약간의 따분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가토는 우편함에서 낯선 다이렉트 메일(DM:수신인에게 직접 보내는 우편광고) 한 통을 접하게 된다. 오마에가 1994년에 설립한 정책학교 ‘잇신주쿠’(一新塾)에서 보낸 것이었다. ‘평범한 당신도 정치가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DM은 잇신주쿠에서 개설한 도의원 양성 코스에 대한 안내문이었다.
“내게는 분명 정치가나 관료의 부패, 세금의 무분별한 낭비 등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정치에 나서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봉투를 뜯어 DM의 내용을 읽어보면서 우리의 정치현실이 의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내가 정말 새로운 형태의 정치실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같은 것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가는 특정한 단체의 간부나 잘 나가는 집안의 2세들만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었는데 말입니다.”
가토의 인생 바꾼 DM 한 통
가토는 그때 접한 DM 한 통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음날 가토는 잇신주쿠를 찾아갔다. 꼭 정치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입학 원서를 써 내려갔다.
도의원 양성 코스 2기생으로 입학한 가토는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오마에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강의를 듣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현장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정책이 생활자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가토는 아예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결심하고 이듬해 리크루트사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1998년 새 정치를 표방하는 야당 민주당의 가두연설을 맡으면서 중앙정치와 인연을 맺고 99년에는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의 홍보담당 특보가 되었다. 마침내 2000년 총선에서 4선의 자민당 출신 현직 정무차관과 경합하여 40%의 득표를 얻고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잇신주쿠의 졸업생으로서, 때로는 강사로서 정치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까지 잇신주쿠를 졸업한 사람은 약 2,000명에 달한다. 이 중에서 가토처럼 중의원 의원이 된 사람은 모두 3명, 지방의원도 50명 정도 있다. 4월에 실시되는 통일지방선거에는 잇신주쿠 졸업생 50여 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작지만 의미 있는 정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잇신주쿠를 방문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것은 꽃가루가 알레르기 환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던 지난 3월말.
홈페이지(www.isshinjuku.com)에 실린 약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높이 330m의 빨간색 도쿄타워가 코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도쿄 미나토(港)구 시바(芝)라는 곳이었다. 택시 기사가 주소대로 정확히 안내했지만 건물을 찾지 못해 몇 분 동안 주변을 배회했다.
잇신주쿠는 큰 길에서 골목 안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한 작은 건물의 2층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한눈에 쏙 들어오는 큰 간판조차 없었다. 내부 모습은 외관보다 더욱 단출했다. 50평도 채 못 되는 공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는 강의용 칠판과 마이크 시설 그리고 접을 수 있는 철제 의자 50~60개가 전부였다.
지난해부터 비영리 특별법인(NPO)으로 전환되었으나 그 전까지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던 잇신주쿠에는 상근이라고는 고작 대표이사 겸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모리시마 노부오(森嶋伸夫)와 직원 한 명밖에 없었다. ‘용하게도 이 적은 인력과 단출한 환경 속에서 생활자주권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학교가 운영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모리시마 국장은 이에 대해 “잇신주쿠 사무국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그럭저럭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만 외곽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의 자발적 참여가 없었다면 존립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잇신주쿠의 탄생 과정은 어떠했을까. 1990년대초 경제인으로서는 정점에 도달한 오마에는 일본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경제의 암울한 조짐과 낡은 정치의 개혁 필요성 등을 책을 통해 꾸준하게 지적해온 그였지만 집필 활동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발언할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교육기관 설립이었다.
참여하여 발언하는 ‘주체적 시민’ 양성이 목표
다국적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 일본지사장, 아태지구 회장을 역임하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을 분석해온 오마에는 연구하면 할수록 일본의 시스템과 시장구조가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계가 보인다’ ‘일본이 보인다’ ‘신국부론’ ‘헤이세이(平成)유신’ 등 수십만 권씩 팔린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일본의 비효율성과 관료 지배의 폐해 등을 지적했지만 일본 사회가 달라지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집필 활동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92년 정책제언형 시민운동단체인 ‘헤이세이 유신의 회’를 발족시켰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해 생활자주권, 새로운 지방자치, 도·주(道州)제로의 전환 등을 촉진했다. 도주제는 중앙부처에 집중된 행정의 힘을 대폭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현재 47개로 나뉘어 있는 도·도·부·현(都道府縣)을 합병하여 11개 도·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1993년 총선거에서는 헤이세이 유신의 회가 추천한 사람 가운데 82명이 당선되어 일본 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국회 활동을 통해 생활자 중심의 정치 변화를 시도했던 오마에의 의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헤이세이 유신을 위한 법안 데생’이라는 제목으로 생활자의 관점에서 만든 83개 법안에 대한 의원입법을 추진했으나 단 한 건도 통과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소속 정당이나 지지 단체에 구속받는 바람에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5년 오마에는 스스로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하고 기성 정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이 역시 실패하고 만다.
책을 써도 안 되고, 추천 의원을 국회에 보내도 소용 없고, 선거에서마저 낙선한 오마에는 교육을 통한 시민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오마에는 ‘정책제언형 시민운동의 폭을 넓힌다’ ‘최신 일본 재생 시나리오를 만든다’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3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1994년 무(無)에서 시작된 시민참여형 정치개혁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잇신주쿠를 통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잇신주쿠에는 1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수강생들의 직업도 의사·공무원·샐러리맨·OL·경영자·연구자·저널리스트·디자이너·학생·주부 등 실로 갖가지다. 지난 8년간 오마에를 중심으로 한 주식회사 잇신주쿠는 지난 1월 사회기업가(NPO)로 거듭났다. 특별비영리활동법인 잇신주쿠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시민이 정책 제언을 배우는 NPO 학교로서 새 출발하게 된 것이다.
모리시마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잇신주쿠의 교육 프로그램은 ‘행동실천형 교육’이다. 12개월 코스로 매주 평일 야간과 월 1회 토·일요일을 이용하여 강의가 열린다. 이와 병행하여 활발한 팀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교실을 벗어나 수강생들이 직접 사회 현장을 시찰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정책대안을 찾아내 토론의 장으로 가지고 온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의 행동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치나 행정에 대해 정책 제언을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경우 직접 나서서 조직을 만들고 자금을 모아 시민사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기업가가 되는 길이다. 이를 위해 잇신주쿠에는 ‘정책제언 코스’와 ‘사회기업가(NPO)코스’ 등 두 개의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각 강좌는 4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제1단계는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 가운데 수강생 각자가 관심 있는 테마를 정하는 ‘문제 발견’의 과정이다. 정치가·관료·경영자·저널리스트·시민운동가·학자·소설가 등 각계의 중심 인물들이 강사로 초빙되지만 이들이 수강생들에게 과제를 던져주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물음을 던져 주체적인 학습의 장을 만들게 된다.
제2단계는 발견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미션(임무)을 정하는 과정이다. 잇신주쿠에서는 가치관의 강요는 절대 금한다. 보수적 경향의 강사나 개혁적 성향의 강사를 구분 없이 초빙해 수강생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스로 믿을 수 있는 해답이 나왔다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 잇신주쿠의 일관된 교육 방침이다.
“잇신주쿠에는 하나의 큰 특징이 있습니다. 입학할 때의 명함과 졸업할 때의 명함이 다른 사람이 매년 전체 졸업생 중 20% 이상이나 되죠.”
모리시마 국장은 1년 간의 교육 기간 중 인생의 전환기를 만나 직장을 옮기거나 창업하거나 NPO 활동에 참여하거나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예컨대 1기생 도카시키 나오미는 잇신주쿠의 교육을 받은 후 다니던 화장품회사측과 협상해 지난 1999년 재직 상태에서 통일지방선거에 출마해 스기나미(杉竝) 구의원에 당선됐다. 정치의 세계뿐만 아니다.
외과의사인 5기생 구와마 유이치로(桑間雄一郞)는 미국 연수중 미·일 간의 의료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일본 내에서는 현직 의사의 입장으로 의료 개혁을 주장하기 힘든 제약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의료 개혁을 촉구하는 적극적인 제언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에 출간된 ’발가벗은 의사님들‘(비즈니스사)은 그의 제언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제3단계는 정책 입안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테마가 정해지면 수강생들 중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팀을 이룬다. 각 팀은 선정한 사회 문제를 놓고 1년 동안 현장방문과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 문제 해결책을 마련한다. 실제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초대하여 팀에서 마련한 문제 해결책을 직접 제언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마지막 제4단계는 행동의 과정이다. 잇신주쿠 설립 초기에는 정책제언을 하려고 해도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문외한들이 만든 정책을 어떻게 쓸 수 있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오히려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료들의 생각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잇신주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며 연락해 오는 추세라는 것이 모리시마 국장의 설명이다. 각 팀은 자신들의 정책제언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적극적 활동에 나섬으로써 한 과정을 마치게 된다.
9기 도·주제 팀은 의원회관을 방문하여 40여 명의 국회의원에게 세제개혁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수 명의 국회의원이 제언 내용에 공감하고 앞으로 법안 개정에 참고하기 위해 의견교환을 계속해 나갈 것을 제안해 왔다고 한다.
8기 지적재산권팀은 전 특허청 장관이 회장으로 있는 ‘지적재산권 국가전략포럼’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지난 8년간 이처럼 구체적인 정책제안 활동을 해온 팀은 100개가 넘는다.
모리시마 국장은 앞으로 잇신주쿠와 같은 정책학교가 지역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역문제는 공공사업·환경·복지·교육 등 매우 다양한데 언제나 찬성파와 반대파가 있게 마련입니다. 주민들을 위해 어떤 것이 최선인가 하는 관점을 떠나 찬성파는 추진을, 반대파는 중지를 목표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죠.
정책학교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토론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주민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찬성·반대를 전제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업이 정말 필요할까,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볼 때 경제성은 있을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 등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전문가의 지원을 받게 되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잇신주쿠는 수강생 1명당 연간 18만엔(약 180만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이 돈으로 사무국을 운영하고 홍보 및 강사비를 충당한다. 그렇다 보니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출 수 없다.
각계 지도층 인사들인 강사들도 다른 곳에서 받는 강의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거의 자원봉사하다시피 참여하고 있다. 강사들 역시 관료 중심에서 시민 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어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을 공감하기 때문에 기꺼이 잇신주쿠의 부름에 응한다.
수강생들은 현장방문 등 외부 활동을 할 때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수강생들은 강의가 있을 때마다 교통비와 숙박비를 합해 3만~4만엔의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기(期)마다 200~300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생활자주권사회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잇신주쿠에 입학하고 있다.
모호한 슬로건보다 구체적인 행동 지향
지난해 5월에 발표된 잇신주쿠의 정책제언을 보면 참여자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으로 옮겼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 행정개혁팀은 ‘생활자주권사회에 뿌리를 둔 정치·행정조직 및 제도의 확립’이라는 테마에 매달렸다.
이들은 관료 중심의 행정에서 탈피하기 위해 행정의 법안작성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직 국회의원만이 법안작성권을 갖도록 제안했다. 관료들은 의원들이 자료와 정보 제출 또는 의견을 요구해올 경우 부서나 해당 공무원의 이름을 명기한 후 제출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무원의 책임소재가 명확해진다는 의견이다.
또한 중앙 행정의 힘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해 국가공무원의 정수를 대폭 줄이자는 제안도 함께 했다. 중앙주권의 행정을 지방주체 행정으로 전환하려면 현재 80만명에 달하는 국가공무원 절반 가량을 지방공무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안은 중·참 양 의원 모두와 각 정당에 보내졌다.
한 지방자치팀은 유권자의 선거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율 10% 상승, 선거비용 30% 삭감하는 방법’이라는 테마를 설정했다. 이들은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참여가 미미한 것은 ‘투표를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심리’ ‘매력 있는 후보가 없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 ‘지지할 만한 정당이나 후보가 없다’ ‘귀찮다’ ‘일이 바쁘다’ 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을 통해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 현 제도 하에서의 선거비용을 면밀하게 분석, 5년 내에 30% 삭감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잇신주쿠에서 다뤄지는 테마는 정치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 분야의 경우 ‘지적자산 입국 실현을 위한 정책제언’과 ‘섬유업계 구조개혁 플랜’이 다뤄졌고 안전보장 분야에서는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본 중국의 환경문제’가 논의되었다. 그 밖에 생활 분야에서는 ‘여행자와 관광지 주민의 라이프 스타일 혁명’ ‘생활의 질 향상을 위한 공공교통 재생 정책’ ‘건강보험법·의사법의 개정방안’ 등이 테마로 다뤄졌다.
잇신주쿠는 일본 내에서도 매우 특이한 정책학교로서 아직은 큰 흐름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모호한 정치개혁 슬로건보다 구체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잇신주쿠의 모습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출판호수 2003년 05월호 | 입력날짜 월간중앙 200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