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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교 2.0

부산 인디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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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4호]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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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문학

“우리나라 교수보다 더 만나기 쉬웠다”

촘스키·지젝 만난 인디고연구소


김경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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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4일 부산 인디고서원에서 만난 인디고연구소 운영진. 왼쪽부터 박용준 인디고 편집장, 정다은 인디고 인문기획팀원, 이윤영 인디고서원 실장, 윤한결 인문기획팀장, 유진재 청소년교육팀장. photo 권효빈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지난 6월 24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강연을 통해 대중을 만났고, 한국의 인문학자들과도 대담했다. 그의 행보는 많은 매체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이름이 연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 상단에 노출됐다. 
   
   그가 한국의 인문학자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첫 방한 이후에도 그는 한국의 젊은 인문학도들과의 교류를 지속해왔다. 지난 2010년 지젝은 영어로 나오는 국내 인문학 교양잡지 ‘인디고(Indigo)’의 창간호에 글을 썼다. 올 초엔 인디고 제작진으로 구성된 인문학 연구소 ‘인디고연구소’가 국내 최초의 지젝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을 출간했다. 지젝과 한국 인문학의 만남을 성사시킨 주역은 이 연구소에 있는 20대 청년들이었다.
   
   
   인문학의 싱크탱크
   
   “서적을 통해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저자와 직접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우린 그 욕구를 그대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박용준(29) 인디고 편집장은 인디고연구소 연구진과 지젝과의 만남을 기획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발칸반도의 국가 슬로베니아에 있는 지젝의 자택을 방문, 인터뷰를 했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수차례의 전화·이메일 인터뷰와 두 차례에 걸친 직접 인터뷰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박 편집장과 ‘인디고 청년들’은 부산시 남천동에 있는 인문교양서점 인디고서원(대표 허아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인디고서원은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각종 인문학 강좌 및 토론 모임을 기획하는 인문학 싱크탱크이기도 하다. 지난 7월 4일 찾은 인디고서원의 건물은 건면적 약 132㎡(40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이다. 이 건물 안에는 유아용 도서, 인문학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과 함께 강연·공연을 할 수 있는 지하공연장, 연구실이 구석구석 들어차 있다. 건물 사방에 창문과 문이 달려 있어 독특한 개방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엊그제 뒷마당에 뿌렸다는 퇴비 냄새는 후텁지근한 바람에 실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친환경적인 분위기마저 조성하고 있었다.
   
   당초 이곳은 부산지역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곳에서 인문학 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청소년·청년들이 서원을 꾸려가고 있다. 지젝 인터뷰집을 낸 인디고연구소는 10대부터 이 서원에서 인문학 공부를 해온 7명 내외의 20대 청년으로 구성돼 있다. 2006년부터 인디고서원에서 활동했다는 유진재(22) 청소년교육팀장은 “인생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 것인가 고민을 하고 동료들과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인디고서원”이라며 “중학교 때 만난 인디고서원은 나를 많이 바꿨다”고 말했다.
   
   
   유명 인문학자와의 대담
   
   “지젝 등 세계적인 철학가로 불리는 이들과의 만남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들은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수들이 만나기가 더 어렵죠.”
   
   인디고연구소는 해외 유명 철학자들을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누는 글로벌 인문학 프로젝트를 지난 2007년 시작했다. 지젝을 비롯해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노엄 촘스키, 재작년에 작고한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 등을 만나 그들의 사상과 이 시대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지난 1월엔 일본의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을 만났고, 5월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만나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대주제 ‘공동선’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소위 백도 없고 줄도 없는 청년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인문학 명사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인디고연구소 청년들은 “해당 인물에 대한 공부를 한 뒤 이메일을 통해 정중히 부탁하는 정공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박용준 편집장은 “오늘 아침에도 이탈리아의 현대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에게서 인터뷰를 승낙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책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프로젝트가 독립적인 출판물로 나온 사례다. 토종 한국 인문학 청년들이 세계적 지성과 독자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책으로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 인문학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국의 한 출판사와는 현재 판권 계약을 마친 상태로 영문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문학 과잉 소비가 인문학 위기 불렀다
   
   지금까지 이들은 학자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대면 인터뷰는 프로젝트의 인터뷰 원칙 중 하나라고 했다. 박 편집장은 “인터뷰는 인문적인 것”이라며 “인간적인 만남이 주는 감동은 인문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사상이 주는 감동만큼 사람 자체가 주는 감동도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실제로 만나보면 실망스러운 인사도 있다”며 “그런 경우에는 추진하던 강연을 취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편집장은 “인문학 자체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고 강좌·콘서트 등 인문학 관련 행사만 쏟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말을 이었다. 주변에서 ‘인문학 강좌’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굳이 대학가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백화점 문화센터, 지역 주민센터 등에서 각종 인문학 강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많은 관련 사이트들이 컴퓨터 창에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문학 강좌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인문학의 위기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과잉 소비가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 처한 위기일 수 있다는 게 인디고 청년들의 생각이었다. 박 편집장은 “사상과 그 실천성에 대한 고민이 없는 강좌를 위한 강좌에선 인문학적 방향성이 사라져 버린다”며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강좌들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인디고연구소 역시 소비되지 않으면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연구소는 인디고서원을 기반으로 정기간행물 발행과 해외 인문학자들과의 인터뷰 진행, 전국 청소년 토론 모임, 인문학콘서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자금 마련이다. 서원에서의 책 판매 대금만으로는 비용을 대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행비는 인세와 행사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유관기관 및 정부단체와 협력하기도 하고 적극적인 후원 요청을 위한 프로모션 행사도 한다.
   
   하지만 상업성으로부터 학문적 독립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유명 백화점에서 서원의 입점을 제안하기도 하고 대가성 후원의 유혹도 있었다. 이윤영(23) 인디고서원 실장은 “재정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인디고서원이 최초로 추구했던 인문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프로모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디고서원은 이달 안에 공익법인 ‘정세청세’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정세청세는 인디고서원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문학 토론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실장은 “저자 초청 강연회, 독서 모임, 도서관 건립 등 각종 독서·도서 지원 사업이 이 공익법인 아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의 행동성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시도다. 박용준 편집장은 “인문학은 인간의 삶에 기여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며 “인디고는 인문학 정신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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